창원 임마누엘교회, 재정 60%를 선교에 ‘본이 되는 교회’ 실천

입력
기사원문
본문 요약봇
성별
말하기 속도

이동 통신망을 이용하여 음성을 재생하면 별도의 데이터 통화료가 부과될 수 있습니다.


경남 창원 임마누엘교회는 1987년 10월 29일에 설립된 대한예수교장로회 대신 경남노회에 소속된 건강한 교회다. 이종승 목사가 성찬식을 거행하고 있는 모습. 창원 임마누엘교회 제공

1987년 10월 29일에 설립된 임마누엘교회(이종승 목사)는 대한예수교장로회 대신 경남노회에 소속된 건강한 교회다.

창원 임마누엘교회는 ‘믿는 자의 본이 되는 교회’라는 표어 아래 주님 오실 때까지 진리를 수호하며 말씀이 능력 있는 교회, 구원의 방주가 되는 교회, 성령운동의 본부가 되는 교회, 세계 선교의 중심이 되는 교회, 하나님 나라 일꾼을 양성하고 배출하는 교회, 꿈을 이뤄 주는 교회, 경남과 대한민국의 복음화 및 성시화에 선봉이 되는 교회 등을 목표로 하고 있다.

특히 임마누엘교회는 경남 지역에 50개 지교회 설립, 농어촌 미자립교회 지원, 지역교회 목회자 섬김, 해외 선교 및 신학교 후원 등을 통해 선교의 중심이 되는 교회를 표방하고 있으며, 국내외 교육기관과 선교 및 장학 사업을 통해 인재 양성에 힘을 쏟고 있다. 또 자녀들을 신앙 안에서 교육하는 것은 물론, 결손가정과 소년소녀 가장을 지원하고 있다. 복음화와 성시화 실천을 위해 교회 재정의 60%를 선교에 사용하고 있다.

담임 이종승 목사는 경기도 용인 출신이다. 그는 교회 개척을 위해 ‘복음이 가장 필요한 곳에서 평생 목회하게 해 달라’는 기도에 대한 응답이 경남 창원이었다고 말한다. 이 목사는 아는 사람 한 명 없고 가본 적도 없던 창원(구 마산)에서 정식으로 교회를 설립하기 전인 86년 10월부터 예배를 드리기 시작했다. 창원은 당시 복음화율 6%도 채 안 되는 지역이었다.

이 목사는 목회자가 되기 전까지 사업을 했다. 69∼70년 모 일간지 지국장으로 일했고 유통과 운수업도 크게 했다. 80년까지 교회 부흥회에 강사를 모시며 찬양을 인도하는 봉사도 했다.

“당시 목사 안수를 받은 지 얼마 안 되는 처남 이병희(부산 남부성결교회) 목사가 40일 금식 기도하던 중 응답을 받았다며 ‘신학공부를 하라’고 했어요. 저는 ‘사업도 잘되는데 무슨 소리냐’며 역정을 냈지요.”

임마누엘 월드비전센터 조감도. 창원 임마누엘교회 제공

하지만 얼마 후 일이 꼬이기 시작했다. 회사 차량이 20개월 동안 13차례나 사고가 났고, 사고 수습 때문에 빚더미에 올라앉게 됐다. 그는 “건강하던 몸이 망가지더니 폐병 2기, B형 간염, 급성 늑막염에 걸려 20개월간 투병생활을 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이 목사는 “죽음 직전에야 하나님께 매달렸다”며 “눈물로 회개하고 기도하는데 성령을 받았고 몸이 불덩이처럼 타오르더니 병이 나았다”고 기적적 치유의 경험을 들려줬다.

이 목사는 이후 82년 서울 백석신학대에 입학, 신학을 공부했고 87년 연고도 없는 마산에서 교회를 개척했다. 교회는 처음엔 상가건물에 가마니를 깔고 시작했다. 이후 2년 만에 장년 12명, 교회학교 60명, 중고등부 40명으로 성장했지만 예배당을 건축하지 못하게 주민들이 방해하는 바람에 91년 창원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 목사는 “새로운 신자들이 구원의 확신과 천국 부활의 소망을 갖고 신앙생활을 할 수 있도록 평신도 신학 강좌를 개설했고 목요일마다 철야 겟세마네 기도회를 열면서 초신자들의 정착률이 80%가 됐다”고 말했다.

이 목사는 92년 유럽 종교개혁지 순례를 다녀왔다. 그는 “은혜를 받기 위해 떠난 그곳에서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며 “파리 로마 암스테르담은 종교개혁의 발자취는 고사하고 교회들이 텅 비어 있거나 관광지로 전락해 있었다”고 회고했다.

한국에 돌아온 이 목사는 교회 강단에서 밤마다 기도를 드렸고 9개월 동안 기도 끝에 “목회는 초대교회로 돌아가고, 선교는 최첨단으로 하자고 결심했다”며 “초대교회가 나누고 섬기며 땅끝까지 복음을 전했던 것처럼 우리 교회도 그렇게 되자”고 성도들 앞에서 선포했다. 이를 위해 헌금 중 40%만 교회 운영을 위해 쓰기로 했다. 나머지는 섬김과 선교를 위해 사용한다는 원칙을 세웠다.

이 목사는 “신사참배를 반대했던 자랑스러운 경남의 신앙 정신은 현대사에서 4·19를 이끌어낸 3·15부정선거 항의 운동과 부마항쟁, 6·10민주화운동을 견인한 것과도 무관하지 않다”며 “이 믿음을 후손에게 가르치고 그 바탕 위에서 한국교회를 다시 하나로 묶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창원=이영재 기자 yj3119@kmib.co.kr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뉴스 미란다 원칙] 취재원과 독자에게는 국민일보에 자유로이 접근할 권리와 반론·정정·추후 보도를 청구할 권리가 있습니다. 고충처리인(gochung@kmib.co.kr)/전화:02-781-9711

이 기사는 언론사에서 생활 섹션으로 분류했습니다.
기사 섹션 분류 안내

기사의 섹션 정보는 해당 언론사의 분류를 따르고 있습니다. 언론사는 개별 기사를 2개 이상 섹션으로 중복 분류할 수 있습니다.

닫기
3